맥주 기계가 식탁 위에서 짐이 되기까지
작년 여름이었나, 더위를 핑계 삼아 집에 덜컥 생맥주 기계를 들였다. 그전에는 르메르디앙 같은 호텔에서나 뷔페식으로 무제한 생맥주를 즐기던 기억이 전부였다. 집에서 마시는 캔맥주도 물론 나쁘지 않지만, 그 시원한 살얼음이 맺힌 맥주잔의 감동을 거실에서도 느끼고 싶다는 아주 단순하고 짧은 생각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때 샀던 기계가 아마 10만 원 중반대였던가. 지금 생각해보면 꽤 큰 비용을 들였는데, 처음 일주일은 정말 신이 나서 퇴근하자마자 냉장고에서 미리 차갑게 식혀둔 맥주 팩을 꺼내 끼우곤 했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번거롭다. 맥주 팩을 교체하는 건 둘째치고, 기계를 닦고 노즐을 관리하는 게 은근히 스트레스였다. 요즘 리얼펍 같은 맥주 프랜차이즈에서 살얼음 맥주라고 광고하며 파는 그런 비주얼을 기대했는데, 집에서는 도무지 그 일정한 온도가 나오지 않아서 밍밍해지기 일쑤였다.
밖에서 마시는 생맥주가 유독 맛있는 이유
결국 기계는 지금 창고 구석에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차라리 그 돈으로 맛있는 안주나 시켜 먹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요즘은 일본 선술집 분위기를 내는 곳에서 하이볼 한 잔에 꼬치구이를 곁들이는 게 훨씬 만족도가 높다. 얼마 전에 근처 이자카야를 갔는데, 확실히 생맥주 냉장고에서 바로 뽑아주는 그 압력과 온도는 가정용 장비로는 흉내를 낼 수가 없더라. 밖에서 마시는 생맥주 가격이 보통 5,000원에서 7,000원 사이니까, 그 돈이 아깝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내가 조금은 어리석었나 싶다. 전문 장비가 유지하는 그 서늘함과 청량감은 그냥 돈 주고 사 먹는 게 훨씬 합리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굳이 집에서 설거지하고 노즐 씻어가며 마실 필요가 있었나 싶다.
무인 가게에서 생맥주를 찾게 되는 밤
그렇다고 술을 끊은 건 또 아니다. 가끔 아주 늦은 밤, 무인 세계맥주집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요즘은 무인 업종이 많아져서 사람 눈치 안 보고 맥주 고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전에는 3만 원대까지 치솟던 가정용 기계 관련 부품이나 전용 맥주 팩 가격도 요즘은 많이 내려갔다고는 하지만, 딱히 다시 꺼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차라리 편의점에서 네 캔에 만 원 하는 행사 맥주를 골라오는 게 마음 편하다. 사실 맥주 맛이라는 게 온도 차이도 있겠지만, 같이 있는 사람이나 그날의 분위기가 더 큰 몫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제도 영화 다시보기 서비스를 켜놓고 혼자 캔맥주를 따는데, 문득 기계 관리가 귀찮아서 안 쓰게 된 내 모습이 조금 웃기기도 했다.
생각보다 더 큰 관리의 귀찮음
생맥주 기계를 샀던 초기에는 무슨 대단한 홈바라도 차릴 것처럼 들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배달 음식을 기다리며 캔을 뜯는 모습이 전부다. 친구가 집에 놀러 오면 한 번쯤 생색내며 뽑아주곤 했는데, 이제는 다들 그냥 캔맥주가 편하다고 말한다. 굳이 전원을 켜고 예열하고, 다 마신 뒤에 맥주 잔여물을 닦아내는 그 과정이 참 사소하게 느껴지면서도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생맥주 기계를 살 거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말릴 것 같다. 그 정성이면 근처 맛집에서 시원하게 뽑아주는 생맥주 한 잔이 훨씬 더 값진 경험이니까 말이다.
여전히 남은 미련과 궁금증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이 다가오면 괜히 기계를 한 번 닦아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참 이상하다. 분명히 불편해서 넣어두었는데, 더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또 그 살얼음 맥주 광고에 마음이 흔들린다. 이게 기술의 문제인지, 아니면 내가 관리를 잘못해서 그런 건지 가끔은 다시 한번 테스트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물론 이번에도 아마 금방 다시 질려서 창고로 들어가겠지만, 그런 작은 시도들이 내 술자리를 얼마나 피곤하게 만들었는지 새삼 느낀다. 어쩌면 술은 그냥 대충 마시는 게 제일 맛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굳이 완벽한 생맥주를 집에서 구현하려고 애쓰는 게 오히려 술 맛을 떨어뜨리는 일이 아닐까 싶다. 오늘 밤에는 그냥 냉장고에 시원하게 넣어둔 캔맥주나 하나 꺼내서 조용히 마셔야겠다.

아, 캔맥주 질투나네요. 온도 유지하는 게 진짜 어려웠나 봐요. 제가 집에서 냉장고에 넣은 맥주를 바로 마시는 걸 좋아하는데, 그 온도 차이 때문에 고민하는 분들 보면 안쓰러워요.
맥주 팩 교체하는 게 생각보다 번거롭네요. 르메르디앙처럼 즐기던 경험과는 많이 달라서요.